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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니지, 김도희 연구부장님. 저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없네요."

나는 그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아이는 우리끼리 말하기로는, '실패작으로' 태어났다.

글쎄, 잘못된 연구 부산물은 적절히 '처분'하라는 규정에 별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는.

그 처분 대상이 사람이 되니까,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하라니까 오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부터, 이 사실이 사회에 드러났을 때 파장까지. -아, 물론 지금 하는 실험 자체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쳐도. 혹자는 수정란일때조차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들 한다. 뭐, 그렇다면 역시 나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봐야할까? 하지만 눈 앞에서 살아서 그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쉼없이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죽이는 것과 세포를 죽이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게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솔직히, 어머니를 따라 의학자가 되기로 한 선택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의사 면허와 유전공학 학위를 딸 때까지는,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부를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나중에 사람을 죽여도 되는지 살려야 하는지 고민할 지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애초에 어머니가 극비 연구인 강화인간 연구사업에 나를 끌여들인 것 부터가 잘못이다. 나를 굳이 끌여들인 어머니의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굳이 말하면 내 경력을 낙하산으로 꽂아서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실험체일 뿐이야. 그 실험체의 실패는 누구의 책임이지?"

"뭐, 엄밀히 말하면 저희 전체의 책임이죠."

"그런데 왜 너만 이곳으로 왔지?"

"이런 골치 아픈 일은 연구부장님의 힘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는 팀원들의 의견이 많아서요."

그녀가 일어서더니 나에게 책상 위의 물건 하나를 던져서 맞혔다. 하. 고기방패나 되는 내 꼬라지라니. 나한테 칼을 안던진게 다행인가.

"이런 멍청이들아! 너를 포함해서 말하는거니까 잘 들어. 네가, 너희들이 하지 못하면 내가 한다. 그런 유유부단함이 우리를 망친다는 것 몰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당신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건 유유부단함이 아니라 인간이 넘으면 안되는 선에 관련된 것이라서 말이지.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헛소리를 하나 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조금 더 화나게 만들고 싶었다. 나한테 물건을 던진것에 대한 아주 소심한 복수로. "유유부단하지 않게 행동하라는거죠? 그렇다면, 제가 키우든 할게요."

"농담하지 마라. 지금 제정신이냐!"

"사람을 죽이라고 시키는 부장님보다야 낫죠?"

"너 지금! 지금..."

방금까지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던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그랬다. 나는 지금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나가봐. 내가 내일 알아서 할게. 그래. 내 생각에도 너한테는 맡길 수는 없다. 이미 해본 내가 하는게... 맞겠지." 안타깝게도 그녀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대답은 착잡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나는 그렇게 부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왔다기 보다는 쫓겨난 것 같지만 아무튼 나왔으니.

어머니한테 싫은 말 좀 들었다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야, 낙하산! 어떻게 됐냐? 어머니한테 어떻게 싸바싸바는 잘 했어?"

연구실로 돌아와서 처음 들은 소리다. 듣고 나서 첫 번째 숨을 쉴 때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숨을 쉴 때에는 황당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 번째 숨을 쉴 때에 비로소 끓는 듯한 분노가 올라왔다. 이 녀석은 지금 사태에 가장 큰 잘못이 있는 놈이다. 기껏 감싸주고 나왔더니 나오자마자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몸 속의 끓는 분노를 그에게 부어버렸고, 그의 고간을 세게 차버렸다. 한번 더 차려는 순간에 동료들이 나를 붙잡고 말린다.

"이 새끼야, 가장 잘못한 놈이 뭐? 네 말은 일부러 부장 앞에서 하지도 않았는데 뭐? 낙하산? 그럼 지금 낙하산 맛좀 볼래? 그냥 시발 네가 한 짓들 전부 부장한테 정리해서 넘기면 된다는 소리지 지금. 무서워서 부장 앞에는 가지도 못한게."

그가 바닥에 뒹굴고 신음을 낸다. 그가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벌레같은 놈. 그 잘못을 해놓고도 왜 자기가 맞았는지도 모를 녀석이다.

나는 그놈을 두고 연구실 옥상에 올라간다. 나는 그저 서서 멍하니 먼 곳을 볼 뿐이었다. 아, 그래. 나의 친구..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몇 달동안은 가지고만 있다가 안피웠던 것 같은데, 참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하지만 오랜 만에 만나서 그런지 나와 구름과자의 사이는 너무 서먹해진 것 같다. 아니, 그것 보다는 지금 기분이 참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거지같다는게 문제인가. 나는 반의 반도 태우지 않은 그것을 그냥 바닥에 던지고 대충 밟아서 꺼버렸다. 남은 것은 연기냄새뿐. 그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담배 피지 말라고 했는데."

"몇달동안 안피다가 지금 딱 한번 피운건데요 뭐."

"그래. 뭐, 대단하네. 몇달 참은 정도면 대단하지. 나는 너를 낳기 전후로 20년도 넘게 참고 있지만."

아까까지는 부장모드였지만 지금은 가족모드로 변한 김도희씨였다.

"부장실 밖으로 나오니까 강정수가 바닥에 뒹굴고 있던데, 나도 실험 기록을 읽어보긴 했다. 그녀석 잘못이 아주 큰 것은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폭력으로 이어지지는 말아야지. 어찌저찌해도 네 동료다. 뭐, 네가 그것만 가지고 찼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놈이 한 말들을 들려드리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그걸 안다면 어머니도 당장 한번 더 차라고 허락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맞다, 선미야. 아까 한 말, 진심이야?"

"네?"

"너, 아까 나한테 그 아이를 키워본다고 하지 않았어? 생각해보니까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아서."

대충 던진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까 그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한 말은... 네. 별로 현실적인건 아니죠. 죄송해요. 말도 안되는 말을 해서.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해보고는 싶어요. 죽는 것 보다야 나을테니까."

"솔직히 그 아이는 유전 정보가 잘못되어서 오래 살지는 모르겠어. 흠, 대충 5년일 것 같지만 실제로 얼마나 살 지는 모르겠어. 뭐, 네 엄마도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야. 만약에 네가 그 아이를 정말로 키워보겠다면 그렇게 하는게 낫겠지. 위에서 허락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한 말은 정말로 미안해요."

"괜찮아. 나도 나 스스로를 살인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더러운 일을 하는 거고, 나는 이미 그걸 여러 번 했고. 뭐...그래. 일이 잘못 풀리더라도 너랑 너희 팀원들이 책임질 일은 없을거야. 내가 지면 져도."

어머니의 말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프로젝트<HAGE>의 결과는 성공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실패는 아니었다. 우리는 세 명의 강화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포함되지 않은 한 명이 더 있었다.

아, 사실 결과와는 별개로 프로젝트는 강제로 해체되었다. 돈 문제부터 해서, 어떤 일 덕분에 실험의 존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모든 책임을 지고 멀리 떠나버렸고, 나와 팀원들은 커리어에 한 줄을 적기는 커녕 한 줄도 적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특이한 외모를 가진 나의 딸 뿐이었다. 뭐, 사실 나의 자식이 아니라 남은 우리의 자식까지 합치면 네명인가. 아, 우리는 예전 팀원들 중 나를 포함해서 두명으로, 자원해서 이전 실험체들의 몸 상태를 관리해주기로 했다.

나야 이미 프로젝트가 해체되기 전 실험체를 키우고 있어서 할 만한 일이었지만, 나머지 한 명은 가장 하지 않을 것 같던 강정수였다.

...

그래. 어쩌다 보니 나는 평생 호감을 가지지 않을 것 같던 그와 같이 지내게 되어버렸다. 인생은 이상하다.

Ep 1

'왜 엄마와 아빠는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거지?', '왜 나는 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을까?'와 같은 왜로 시작하는 질문이 머릿 속에 가득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밖을 바라본다. 따뜻한 봄의 공기는 창문에 막혀 그녀에게 닿을 수 없었지만, 햇살은 닿을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새 몇마리가 창문 앞에서 소녀를 잠시 보다가 간다.

세상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끄는 듯 하다. 그리고, 소녀는 손을 뿌리치지 않고 처음으로 집을 나왔다.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문을 슬쩍 열고 나왔다.

"와아..."

그녀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한번씩 보고 지나쳐도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고 싶었다. 연구실과 집을 벗어난 새로운 세상이 신기할 뿐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길거리의 풀 한포기만 해도, 지나다니는 벌레 한마리만 해도, 사방이 콘크리트 벽인 칙칙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연구실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보며 계속 걸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멀리 나와버렸지만, 그녀는 자신이 멀리 나온 것도 몰랐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을 찾았다.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한발자국씩 내딛는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 중 한 아이가 쭈뼛거리는 그녀를 발견했다! 아이는 그녀를 일행으로 데려왔다.

"와! 신기하다. 귀 뭐야? 머리 하얗다!"

그녀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그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이곳 저곳을 본다.

일행 중 한명은 그녀의 움직이는 꼬리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누군가 꼬리를 손으로 확 잡아챘다. 소녀는 깜짝 놀랐고,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파..아파요."

그 때, 다른 아이가 다가와 꼬리를 잡고 있던 누군가의 손을 풀었다.

"야! 얘가 아프다고 하잖아!

"와~ 얘 울렸어!"

"아니야! 울리려고 한거 아니거든! 가, 가짜인줄 알았지!"

꼬리를 잡았던 아이도 이렇게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진짜 네 몸인줄은 몰랐어."

꼬리를 잡았던 아이가 그녀에게 사과하고 손을 내민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잡았던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내민 손을 보고 잠시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녀가 길거리에서 주운 꽃을 아이의 손에 올린다.

"꽃?"

소녀는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다 미소지을 뿐이었다.

"사과, 받아주는거야?"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에게 사과한 아이는, 곧, 소녀가 조금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귀랑 꼬리는???"

"이름은 설이야. 백설."

"아, 내 이름을 안말했구나! 나는 한수진이야! 너...엄청 예쁘게 생겼구나!"

그렇게 대화하던 둘 사이에, 원래 놀고 있던 아이들이 끼어든다.

"야야, 너희들만 이야기하냐!"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곧 그녀가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 별로 개의치 않았고, 그들은 하루 종일 잔뜩 재미있게 놀았다.

소녀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소녀를 찾기 전 까지.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에게 세상의 가혹함을 보여주기 싫었다. 특이한 외모,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한 꼬리와 귀. 분명히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찌검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소녀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그녀의 마음 한켠으로는 소녀가 어떻게든 바깥 세상과 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단지 너무나도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본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작은 소녀는, 분명히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분명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수 말이 맞았네. 내가 너무 가둬뒀어..."

처음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소녀를 혼내고자 했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접었다. 소녀를 보통 학교에는 보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밖에는 나가게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설아."

"네 엄마."

소녀는, 설은 감정 표현이 서툴렀지만, 오랫동안 그녀와 지낸 선미는 분명 알 수 있었다. 분명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선미는 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몸을 낮춰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설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는다.

"밖은, 흠. 저번에 엄마가 말했던 것 처럼 무서운 곳이지만, 엄마 생각보다 무서운 곳은 아닐지도 모르겠어. 아직도 엄마는 고민중이지만... 그래. 집 밖에 나가도 좋아."

설은 엷은 미소를 보인다. 그녀의 꼬리가 주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미는, 자신이 그녀를 가둬왔던 행동이 틀린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진짜에요?"

"응. 대신, 당분간은 엄마랑 아빠랑 같이 다니자."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그 때, 집 현관을 열고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설아!"

그는 설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번쩍 안았다. 그리고는 도대체 어디에 나갔다 왔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누가 해코지는 하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묻기 시작한다.

"정수야. 설이는 괜찮아. 설이는 동네 아이들이랑 놀고 있었어..."

"진짜로?"

정수는 은근 놀란 눈치였다. 본인도 설을 바깥 세상과 접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그도 항상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응. 네 말이 맞았어. 네 말대로, 완전히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나, 몸의 반쯤은 기계인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설이는 그렇게 '특이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

"아니, 아니, 그것보다, 내 딸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선미가 정수를 다시 바라본다. 그의 옷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도 눈치를 챘는지 옷을 살짝 살짝 들었다 놔본다.

"너, 완전히 아버지구나."

"뭐, 너야말로 지금 머리카락이 땀에 쩔어있어. 너야말로 완전히 한 아이의 어머니지."

"그러게...분명,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벌써 6년이라니. 시간도 참 빠르네."

"뭐, 6년 전에 네 발로 차인 부분은 예전처럼 가끔 아플 때가 있는 모양인걸?"

그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 말은 설이 앞에서 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은 잘 되는 것 같던데?"

하지만 선미는 한 술 더 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계속 엿듣고 있던 설은 그들에게 질문했다.

"뭐가 잘 되는거에요?"

"남 말할 처지가 아니네요. 백씨."

다음 날부터, 선미와 정수는 설을 데리고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 가족을 반기지는 않았다. 분명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부부는 설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막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누가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소녀는 그들 부부의 걱정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어제 동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놀이터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어제 그 자리에는, 소녀와 놀았던 그 아이들 외에도 다른 무리가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어제의 무리보다 조금 더 커보였다. 설은 수진이 그들에게 항의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 무리 중 덩치가 큰 한명이 수진을 강하게 밀쳤고, 밀쳐진 그녀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와! 완전 코뿔소네!"

그 무리들은 넘어진 수진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선미와 정수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지만, 설은 이미 수진이 넘어가자마자 그녀에게 달려간 뒤였다.

"설아!"

설은 수진에게 손을 내민다. 아니, 정확히는 손을 잡고 그녀를 직접 세웠다. 하지만, 수진과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너는 또 뭔데! 이상한 꼬리나 달고 와서는."

아까 수진을 밀쳤던 무리의 아이는, 이제 설을 아주 세게 밀치려고 했다. 찰나의 순간, 설은 그것을 피했다. 소녀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반응속도가 튀어나왔다. 소녀를 밀치려 했던 아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너... 감히 날 넘어뜨렸겠다! 우리 부모님이 누군줄 알고! 각오해!"

선미와 정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 무리들은 곧이어 어른들을 데려왔다. 덩치 큰 아이의 어머니였다.

"이런 괴물년이! 어디서 내 새끼를!"

괴물. 그것이 설을 부르는 다른 단어로 날아왔다.

"괴물? 지금 당신 아들이 혼자서 넘어져놓고서는 어디서 내 딸보고!"

"아이고~ 동네 사람들한테 이런 괴물이 아이를 괴롭힌다고 소문이 퍼져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해? 우리 남편이, 경찰이야!"

덩치 큰 아이의 어머니가 설에게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그녀의 귀를 손으로 잡는다.

"당장 손 안떼!"

정수가 그 팔을 다급하게 뿌리치고, 설을 바로 그의 품으로 데려온다.

"안 그래도 아드님이랑 친구이 사고를 많이 친다고 이곳을 순찰하시는 분들께 들었는데, 저희 아이들도 당했네요. 아드님이 제 아이들을 밀쳤다던데."

"넌 누구야!"

"그냥 오늘 휴무인 경찰입니다."

"경찰? 우리 남편이 경찰 높은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뭐, 굳이 직급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아주머니께서 다른 분의 따님한테도 폭력 행사하는걸 직접 봐서 넘어가긴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자, 여기 그쪽 아드님도 하나 받으시고."

그가 웃으면서 대하는 표정에서, 한기가 서려나왔다.

"뭐? 이렇게 젋은데?"

"...저도 쉬는 날에 이러고 싶지는 않네요. 하. 이번주 안에 다시 직접 연락 주세요. 안그러면 제가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당신 아드님만 소중한게 아니라서. 아 그래, 그쪽 아드님께서는 저기 뒤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다시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좀 전해주세요.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가만 있지 않을겁니다."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김승우입니다. 따님께서 참 예쁘시네요. "저는 강정수, 그리고 이쪽은 저희 아내, 백선미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저희 딸이 따님의 꼬리를 실수로 세게 잡았다고 했습니다. 네. 처음에는 저도 믿지 못했지만, 사실이라면 사과드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이 따님에게는 잘 사과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여러분들께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는게 맞겠죠.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사과는...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 딸은 따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은 이미 수진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또 언제 주웠는지 모를 꽃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괴물일까?" "나를 도와줬는데 어떻게 괴물이야?" "나는 귀도 달라. 꼬리도 있어. 이상한 괴물..." "아니야! 전부 귀엽다고!" "...진짜?" "진짜로! 와앗?" 설이 그녀를 안는다. 소녀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딸이 괴물이라는 말을 들은 선미와 정수는, 그녀를 수술하기로 했다. 그녀를 보통 사람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래야 세상이 설을 덜 주목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설도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 며칠동안, 그들이 보기에 설은 그녀의 다른 모습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설은 완강했다. "싫어요." "하지만 설아, 엄마는 네가 더 편하게 밖에 나갔으면 좋겠어. 너도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테니까." "괜찮아요." "정말로?" 설은 다시 되묻는 선미의 말에 지체 없이 대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