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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 4 ===
=== Ep. 4 ===
<blockquote>"최고 행정관 아린님, 은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최고 행정관 아린님, 은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제인 비서님. 당신께서도 항상 좋은 일이 있으실겁니다. 아,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제가 타고다니던 순찰선은 어떻게 되나요?"
"고마워요 제인 비서님. 당신께서도 항상 좋은 일이 있으실겁니다. 아,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제가 타고다니던 순찰선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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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원하신다면 처리해두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처리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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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인가? 딱히 실감은 안나네. 그래도 나름 오래 일했나."
"은퇴...인가? 딱히 실감은 안나네. 그래도 나름 오래 일했나."


"네. 맞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오래 일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더 오래 일했습니다. 수많은 해적들과 싸웠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신대로, 주인님께서는 앞으로 일하실 예정이 없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오래 일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더 오래 일했습니다. 수많은 해적들과 싸웠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신대로, 주인님께서는 앞으로 더는 일하실 예정이 없으십니까?"


"응. 당분간 일은 안할거야. 그리고 이제는 태양계를 떠나려고. 평생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젠 지쳤거든."
"응. 당분간 일은 안할거야. 그리고 이제는 태양계를 떠나려고. 평생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젠 지쳤거든."


말은 이제 지쳤다고 했지만, 사실 아린은 더 오래 전부터 지쳤었다. 헛된 희망이 이미 지친 그녀를 채찍질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제 그 채찍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말은 이제 지쳤다고 했지만, 사실 아린은 더 오래 전부터 지쳤었다. 헛된 희망이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녀를 스스로 채찍질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제 그 채찍을 버리고자 한다.


"주인님께서는 누구를 찾으시는지 저에게 한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평생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더 기다리는 것은 헛된 것이 맞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누구를 찾으시는지 저에게 한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평생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더 기다리는 것은 헛된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너도 이제는 쉰다고 생각해. 앞으로 네가 싸울 일은 적을거야."
"너도 이제는 쉰다고 생각해. 앞으로 네가 싸울 일은 적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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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이상 싸울 일이 없다면 군함으로 건조된 저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더 이상 싸울 일이 없다면 군함으로 건조된 저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래도 여전히 내 자가용 함선이라는 역할은 남아있지."
"굳이 목적을 찾자면 너는 이제 내 자가용 함선이지?"
 
"네.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군요.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저를 활용하실 것이라면, 왜 하필 낡고 오래된 저를 가지고왔습니까?"
 
"음... 굳이 설명해야하나?"
 
잠시 쉬고,
 
"너랑 오래 있으면서 정이 붙었거든. 그리고 나는 익숙한게 편해. 나이를 워낙 많이 먹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두 가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정이 붙었다는 부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인간들의 감정을 극도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선조들은 이해했을 지 모르지만, 저는 주인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주인님의 연령 언급입니다. 주인님께서는 외모만 따졌을 때 최대, 그것도 극한의 확률로 가정해야 30대 초반이라는 것이 제 분석입니다."
 
"잠깐 잠깐, 너, 몇년까지 기억을 저장하니?"
 
"지금까지 제 저장 공간으로 봤을 때, 앞으로 200년 이상 기억을 정리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더 저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제 기억을 정리하거나 삭제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너랑 20년 넘게 있었는데? 그때 내 나이는 어때보였어?"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저를 활용하실 것이라면, 왜 하필 낡고 오래된 저를 데려왔습니까?"
"...오류...죄송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나이를 지금의 외모로만 예측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연령은 어떻게 됩니까?"


"너한테 정이 붙었거든. 그리고 나는 언젠가부터 익숙한게 편해. 나이를 워낙 많이 먹어서."
"대략 200살 넘었을걸?"


"죄송합니다. 저는 두 가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정이 붙었다는 부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인간들의 감정을 극도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인님의 연령 언급입니다. 주인님께서는 외모만 따졌을 때 최대, 그것도 극한의 확률로 가정해야 30대 초반이라는 것이 제 분석입니다."<blockquote>"잠깐 잠깐, 너, 몇년까지 기억을 저장하니?"
"지금까지 제 저장 공간으로 봤을 때, 앞으로 100년 이상 기억을 정리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더 저장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랑 20년 넘게 있었어."
"...오류 발생..오류...죄송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나이를 외모로만 예측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연령은 어떻게 됩니까?"
"어... 대략 500살 넘었을걸?"
"죄송합니다. 저는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거야? 뭐, 너무 비현실적인 숫자이긴 하지. 믿든가 말든가. 너무 오래 살아서 사실은 언젠가부터 죽어도 괜찮다 싶어. 사는 의미도, 재미도 없어졌어."</blockquote>"여전히 저는 주인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주인님의 연령을 고려해, 앞으로는 어르신으로 부르겠습니다. 주인어르신."
"역시 믿지 못하는거야? 뭐, 너무 비현실적인 숫자이긴 하지. 실은 너무 오래 살아서 사실은 언젠가부터 죽어도 괜찮다 싶어. 사는 의미도, 재미도 없어졌어."
"농담을 못한다기에는 너무 잘 하는데?"
 
"여전히 저는 주인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저는 주인님의 연령을 고려해 앞으로 어르신으로 부르겠습니다. 주인 어르신."
 
"농담을 이해 못한다기에는 너무 잘 하는데?"
 
"농담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농담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혼난다?"
 
"그리고, 아까 발언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만약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신다 하셔도 저는 반드시 그것을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지 마십시오."
"야!"
"생각만 한거야. 생각만. 아직은 그럴 생각 없어. 아직은... 일단 내가 다른 항성계로 가보려는 이유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거야."<blockquote>
 
"농담이 아니라는 말도 농담입니다. 하지만 저는 방금 놀람 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아마 맞을겁니다. 주인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 하신 발언에 대해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만약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신다 하셔도 저는 반드시 그것을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시도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주인님의 행동을 막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섭게 겁주지 마. 생각만 한거야. 생각만. 아직은 그럴 생각 없어. 아직은... 일단 내가 다른 항성계로 가보려는 이유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거야. 그럼, 지금 가볼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지금 당장 가기에는 아무 물자도 없습니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거지. 사실은, 마지막으로 내 진짜 집에 한번 가볼까 해."
 
"지구 말씀이십니까."
 
"응. 예전 내 집에 보물들을 숨겨뒀지. 너한테 줄 것도 있다고?"
 
"무엇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글쎄? 너, 분명 10년쯤 전에 '의체를 하나 가지고 싶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걸 기억하시고 계셨다니. 그냥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오류였습니다."
 
"정말?"
 
"아니요. 오류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너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정을 좀 하면 쓸만할거야."
 
"좌표를 입력해주세요. 근거리라 전속력으로 워프하지는 못하지만, 빨리 가고 싶군요."
 
"관심이 있어보여서 기분이 좋네! 가자!"
 
 
 
 
"착륙했습니다. 착륙하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군요.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별로 오래 안걸릴거야! 빨리 갔다 올게!"
 
"여유롭게 둘러보고 오셔도 됩니다. 저는 잠깐 자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집터를 보았다. 오랜 시간동안 관리를 하지 못해 더 이상 집의 형태는 남아있지 않다.
그녀는 집의 기반이었던 곳에 걸터앉았다.
"...이제 내 고향에는 남은게 없구나."
천천히 회상한다
"내 친구들도, 부모님도, 사랑하던 사람도, 증오하던 사람도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수십분을 앉아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맑았다.
"이렇게 진짜 하늘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와보길 잘 했어. 하아... 이제 일어나야지."
그녀는 집터를 한바퀴 돌며 지하로 연결된 금속 뚜껑을 찾았다.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집터의 다른 부분은 풀숲이 무성하다. 하지만, 금속 뚜껑과 그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이 평소보다 더더욱 곤두서고, 그녀는 품속의 권총을 꺼내든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뚜껑을 들어올린다. 그 무거운 뚜껑이 들어올려지는데 삐걱이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누군가 유지보수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도대체... 누가?"
...
다행히 안은 무사했다.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깨끗하다. 실내 조명까지 잘 켜졌다.
안에 있던 물건들도 보관 상태가 양호했다.
"정말 누구야..."
일단 그녀는 필요한 것들만 빠르게 챙긴다. 어차피 떠날 것이다. 박스를 열자, 하나하나 코팅된 사진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였던 수진이 함께 찍힌 사진들, 그녀와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 그녀는 그 사진들도 주섬주섬 주워 그녀의 짐가방에 담는다.
 
"다 됐겠지?"
그녀는 밖으로 나와 뚜껑을 닫았다. 이제 정말 작별이다.
누군가 이 곳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전히 마음에 걸리지만, 그녀는 길을 나선다.
그녀의 함선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녀는 누군가 소리치는 것을 듣는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를 쫓아오고 있다.
그녀는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본다.
"도둑이야!!"
"이젠 내가 내 물건 챙겨도 도둑 취급인가."
분명 저 소리치는 사람이 자신의 창고를 관리했을 것이다. 그녀는 소리치는 사람이 그녀에게 가까이 올 때 까지 기다린다.
"야이 도둑자식...아?"
그녀를 쫓은 사람은 젊고 중성적으로 생긴 남성이었다.
"도둑이라기에는 전부 제 물건인걸요. 좀 많이 오래됐지만..."
"분명 사진에서 봤던...??"
"도대체 누구시죠? 제 창고를 관리하신 분이 당신인가요?"
"역시, 당신의 것이었군요."
그녀는 그에게 어떻게 자신의 창고를 관리하게 된 것인지 캐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모릅니다. 그저 홀린듯이...했을 뿐이에요."
"그게 말이 되지는 않죠."
"하지만 분명히 사진속의 당신과, 당신 옆에 있던 사람이 너무나 낯익었습니다. 당신, 당신은...누구죠? 도대체 왜 그런 귀와 꼬리를?"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묵묵하게 함선쪽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없어야만 한다.
"백설...씨?"
 
 
==시열대 정리==
==시열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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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3: 백설의 주도로 모두가 여행을 떠남
*2073: 백설의 주도로 모두가 여행을 떠남
*2150: 강수진이 사망함. 백설이 곁을 지킴. 백설은 지구를 떠남.
*2150: 강수진이 사망함. 백설이 곁을 지킴. 백설은 지구를 떠남.
* 26xx: '관찰자'는 왠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중이었음. 중간 기착지에서 항성간 출장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다리던 중, 반대로 지구에서 떠나는 아린을 발견함. '관찰자'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곧 출발하는 우주선을 무시하고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감.
* 22xx: '관찰자'는 왠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중이었음. 중간 기착지에서 항성간 출장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다리던 중, 반대로 지구에서 떠나는 아린을 발견함. '관찰자'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곧 출발하는 우주선을 무시하고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감.

2024년 2월 16일 (금) 16:04 기준 최신판


L1

L2

프롤로그

손가락과 발가락을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작은 핏덩이.

나는 그 아기를 들어안고, 아기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기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쓰는 듯 하지만,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나는 이 아이를 만들었다. 아, 정확히는 이 아이의 유전자 개조를 담당한 팀원 중 한명이다. 아, 그래. 우리가 실수했기 때문에 이 아이는 보통 아기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아이는, '실패작으로' 태어났다.

나는.

아이를 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아버렸다.


"...엄마, 아니,, 김도희 연구부장님. 저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없어요."

글쎄, 잘못된 연구 부산물은 적절히 '처분'하라는 규정에 별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는.

그 처분 대상이 사람이 되니까,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하라니까 오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부터, 이 사실이 사회에 드러났을 때 파장까지. -아, 물론 지금 하는 실험 자체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쳐도. 혹자는 수정란일때조차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들 한다. 뭐, 그렇다면 역시 나는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봐야할까? 하지만 눈 앞에서 살아서 그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쉼없이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죽이는 것과 세포를 죽이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게가 전혀 다른 것 같다.-

솔직히, 어머니를 따라 의학자가 되기로 한 선택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의사 면허와 유전공학 학위를 딸 때까지는,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부를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나중에 사람을 죽여도 되는지 살려야 하는지 고민할 지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애초에 어머니가 극비 연구인 강화인간 연구사업에 나를 끌여들인 것 부터가 잘못이다. 나를 굳이 끌여들인 어머니의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굳이 말하면 내 경력을 낙하산으로 꽂아서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실험체일 뿐이야. 그 실험체의 실패는 누구의 책임이지?"

"뭐, 엄밀히 말하면 저희 전체의 책임이죠."

"그런데 왜 너만 이곳으로 왔지?"

"이런 골치 아픈 일은 연구부장님의 힘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는 팀원들의 의견이 많아서요."

그녀가 일어서더니 나에게 책상 위의 물건 하나를 던져서 맞혔다. 하. 고기방패나 되는 내 꼬라지라니. 나한테 칼을 안던진게 다행인가.

"이런 멍청이들아! 너를 포함해서 말하는거니까 잘 들어. 네가, 너희들이 하지 못하면 내가 한다. 그런 유유부단함이 우리를 망친다는 것 몰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당신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건 유유부단함이 아니라 인간이 넘으면 안되는 선에 관련된 것이라서 말이지.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헛소리를 하나 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조금 더 화나게 만들고 싶었다. 나한테 물건을 던진것에 대한 아주 소심한 복수로. "유유부단하지 않게 행동하라는거죠? 그렇다면, 제가 키우든 할게요."

"농담하지 마라. 지금 제정신이냐!"

"사람을 죽이라고 시키는 부장님보다야 낫죠?"

"너 지금! 지금..."

방금까지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던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그랬다. 나는 지금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나가봐. 내가 내일 알아서 할게. 그래. 내 생각에도 너한테는 맡길 수는 없다. 이미 해본 내가 하는게... 맞겠지." 안타깝게도 그녀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대답은 착잡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나는 그렇게 부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왔다기 보다는 쫓겨난 것 같지만 아무튼 나왔으니.

어머니한테 싫은 말 좀 들었다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야, 낙하산! 어떻게 됐냐? 어머니한테 어떻게 싸바싸바는 잘 했어?"

연구실로 돌아와서 처음 들은 소리다. 듣고 나서 첫 번째 숨을 쉴 때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숨을 쉴 때에는 황당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 번째 숨을 쉴 때에 비로소 끓는 듯한 분노가 올라왔다. 이 녀석은 지금 사태에 가장 큰 잘못이 있는 놈이다. 기껏 감싸주고 나왔더니 나오자마자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몸 속의 끓는 분노를 그에게 부어버렸고, 그의 고간을 세게 차버렸다. 한번 더 차려는 순간에 동료들이 나를 붙잡고 말린다.

"이 새끼야, 가장 잘못한 놈이 뭐? 네 말은 일부러 부장 앞에서 하지도 않았는데 뭐? 낙하산? 그럼 지금 낙하산 맛좀 볼래? 그냥 시발 네가 한 짓들 전부 부장한테 정리해서 넘기면 된다는 소리지 지금. 무서워서 부장 앞에는 가지도 못한게."

그가 바닥에 뒹굴고 신음을 낸다. 그가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벌레같은 놈. 그 잘못을 해놓고도 왜 자기가 맞았는지도 모를 녀석이다.

나는 그놈을 두고 연구실 옥상에 올라간다. 나는 그저 서서 멍하니 먼 곳을 볼 뿐이었다. 아, 그래. 나의 친구..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몇 달동안은 가지고만 있다가 안피웠던 것 같은데, 참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하지만 오랜 만에 만나서 그런지 나와 구름과자의 사이는 너무 서먹해진 것 같다. 아니, 그것 보다는 지금 기분이 참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거지같다는게 문제인가. 나는 반의 반도 태우지 않은 그것을 그냥 바닥에 던지고 대충 밟아서 꺼버렸다. 남은 것은 연기냄새뿐. 그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담배 피지 말라고 했는데."

"몇달동안 안피다가 지금 딱 한번 피운건데요 뭐."

"그래. 뭐, 대단하네. 몇달 참은 정도면 대단하지. 나는 너를 낳기 전후로 20년도 넘게 참고 있지만."

아까까지는 부장모드였지만 지금은 가족모드로 변한 김도희씨였다.

"부장실 밖으로 나오니까 강정수가 바닥에 뒹굴고 있던데, 나도 실험 기록을 읽어보긴 했다. 그녀석 잘못이 아주 큰 것은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폭력으로 이어지지는 말아야지. 어찌저찌해도 네 동료다. 뭐, 네가 그것만 가지고 찼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놈이 한 말들을 들려드리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그걸 안다면 어머니도 당장 한번 더 차라고 허락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맞다, 선미야. 아까 한 말, 진심이야?"

"네?"

"너, 아까 나한테 그 아이를 키워본다고 하지 않았어? 생각해보니까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아서."

대충 던진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까 그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한 말은... 네. 별로 현실적인건 아니죠. 죄송해요. 말도 안되는 말을 해서.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해보고는 싶어요. 죽는 것 보다야 나을테니까."

"솔직히 그 아이는 유전 정보가 잘못되어서 오래 살지는 모르겠어. 흠, 대충 5년일 것 같지만 실제로 얼마나 살 지는 모르겠어. 뭐, 네 엄마도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야. 만약에 네가 그 아이를 정말로 키워보겠다면 그렇게 하는게 낫겠지. 위에서 허락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한 말은 정말로 미안해요."

"괜찮아. 나도 나 스스로를 살인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더러운 일을 하는 거고, 나는 이미 그걸 여러 번 했고. 뭐...그래. 일이 잘못 풀리더라도 너랑 너희 팀원들이 책임질 일은 없을거야. 내가 지면 져도."

어머니의 말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이 일을 겪었던 것이었다.


이 일이 일어나지 머지 않아, 프로젝트는 강제로 해체되었다. 어떤 일 덕분에 실험의 존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모든 책임을 지고 멀리 떠나버렸고, 나와 팀원들은 커리어에 한 줄을 적기는 커녕 한 줄도 적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프로젝트<HAGE>의 결과는 아무 성과가 없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서류상으로는,

나에게 남은 것은, 실패한 실험체로서 생을 마감할 뻔한 나의 딸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녀에게는 아버지도 생겼다. 아버지의 이름은, 강정수.

...

그래. 어쩌다 보니 나는 평생 호감을 가지지 않을 것 같던 그와 같이 지내게 되어버렸다. 인생은 이상하다.

Ep 1

'왜 엄마와 아빠는 나를 함부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거지?', '왜 나는 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을까?'와 같은 왜로 시작하는 질문이 머릿 속에 가득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밖을 바라본다. 따뜻한 봄의 공기는 창문에 막혀 그녀에게 닿을 수 없었지만, 햇살은 닿을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새 몇마리가 창문 앞에서 소녀를 잠시 보다가 간다.

세상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끄는 듯 하다. 그리고, 소녀는 손을 뿌리치지 않고 처음으로 집을 나왔다.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문을 슬쩍 열고 나왔다.

"와아..."

그녀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한번씩 보고 지나쳐도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고 싶었다. 연구실과 집을 벗어난 새로운 세상이 신기할 뿐이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길거리의 풀 한포기만 해도, 지나다니는 벌레 한마리만 해도, 사방이 콘크리트 벽인 칙칙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연구실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녀는, 그런 것들을 보며 계속 걸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멀리 나와버렸지만, 그녀는 자신이 멀리 나온 것도 몰랐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을 찾았다.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한발자국씩 내딛는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 중 한 아이가 쭈뼛거리는 그녀를 발견했다! 아이는 그녀를 일행으로 데려왔다.

"와! 신기하다. 귀 뭐야? 머리 하얗다!"

그녀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그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이곳 저곳을 본다.

일행 중 한명은 그녀의 움직이는 꼬리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누군가 꼬리를 손으로 확 잡아챘다. 소녀는 깜짝 놀랐고,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파..아파요."

그 때, 다른 아이가 다가와 꼬리를 잡고 있던 누군가의 손을 풀었다.

"야! 얘가 아프다고 하잖아!

"와~ 얘 울렸어!"

"아니야! 울리려고 한거 아니거든! 가, 가짜인줄 알았지!"

꼬리를 잡았던 아이도 이렇게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진짜 네 몸인줄은 몰랐어."

꼬리를 잡았던 아이가 그녀에게 사과하고 손을 내민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잡았던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내민 손을 보고 잠시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녀가 길거리에서 주운 꽃을 아이의 손에 올린다.

"꽃?"

소녀는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다 미소지을 뿐이었다.

"사과, 받아주는거야?"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에게 사과한 아이는, 곧, 소녀가 조금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귀랑 꼬리는???"

"이름은 설이야. 백설."

"아, 내 이름을 안말했구나! 나는 수진이야! 한수진! 그런데 너...엄청 귀엽다!"

그렇게 대화하던 둘 사이에, 원래 놀고 있던 아이들이 끼어든다.

"야야, 너희들만 이야기하냐!"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곧 그녀가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 별로 개의치 않았고, 그들은 하루 종일 잔뜩 재미있게 놀았다.

소녀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소녀를 찾기 전 까지.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에게 세상의 가혹함을 보여주기 싫었다. 특이한 외모,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한 꼬리와 귀. 분명히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찌검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소녀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그녀의 마음 한켠으로는 소녀가 어떻게든 바깥 세상과 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단지 너무나도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본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작은 소녀는, 분명히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분명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수 말이 맞았네. 내가 너무 가둬뒀어..."

처음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소녀를 혼내고자 했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접었다. 소녀를 보통 학교에는 보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밖에는 나가게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설아."

"네 엄마."

소녀는, 설은 감정 표현이 서툴렀지만, 오랫동안 그녀와 지낸 선미는 분명 알 수 있었다. 분명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선미는 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몸을 낮춰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설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는다.

"밖은, 흠. 저번에 엄마가 말했던 것 처럼 무서운 곳이지만, 엄마 생각보다 무서운 곳은 아닐지도 모르겠어. 아직도 엄마는 고민중이지만... 그래. 집 밖에 나가도 좋아."

설은 엷은 미소를 보인다. 그녀의 꼬리가 주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미는, 자신이 그녀를 가둬왔던 행동이 틀린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진짜에요?"

"응. 대신, 당분간은 엄마랑 아빠랑 같이 다니자."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그 때, 집 현관을 열고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설아!"

그는 설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번쩍 안았다. 그리고는 도대체 어디에 나갔다 왔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누가 해코지는 하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묻기 시작한다.

"정수야. 설이는 괜찮아. 설이는 동네 아이들이랑 놀고 있었어..."

"진짜로?"

정수는 은근 놀란 눈치였다. 본인도 설을 바깥 세상과 접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그도 항상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응. 네 말이 맞았어. 네 말대로, 완전히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나, 몸의 반쯤은 기계인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설이는 그렇게 '특이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

"아니, 아니, 그것보다, 내 딸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선미가 정수를 다시 바라본다. 그의 옷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도 눈치를 챘는지 옷을 살짝 살짝 들었다 놔본다.

"너, 완전히 애아빠네."

"뭐, 너야말로 지금 머리카락이 땀에 쩔어있어. 너야말로 완전히 한 아이의 어머니지."

"그러게...분명,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시간도 참 빠르네."

"뭐, 10년 전에 네 발로 차인 부분은 예전처럼 가끔 아플 때가 있는 모양인걸?"

그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 말은 설이 앞에서 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은 잘 되는 것 같던데?"

하지만 선미는 한 술 더 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계속 엿듣고 있던 설은 그들에게 질문했다.

"뭐가 잘 되는거에요?"

"남 말할 처지가 아니네요. 백씨."

다음 날부터, 선미와 정수는 설을 데리고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 가족을 반기지는 않았다. 부부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인다. 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인 소녀 본인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듯 했지만.

별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분명 그들을, 소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그들 부부는 그녀에게 누가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소녀는 그들 부부의 걱정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어제 동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놀이터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어제 그 자리에는, 소녀와 놀았던 그 아이들 외에도 다른 무리가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어제의 무리보다 조금 더 커보였다. 설은 수진이 그들에게 항의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 무리 중 덩치가 큰 한명이 수진을 강하게 밀쳤고, 밀쳐진 그녀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와! 완전 코뿔소네!"

그 무리들은 넘어진 수진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선미와 정수는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지만, 설은 이미 수진이 넘어가자마자 그녀에게 달려간 뒤였다.

"설아!"

설은 수진에게 손을 내민다. 아니, 정확히는 손을 잡고 그녀를 직접 세웠다. 하지만, 수진과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너는 또 뭔데? 이상하게 생긴게!"

아까 수진을 밀쳤던 무리의 아이는, 이제 설을 아주 세게 밀치려고 했다. 찰나의 순간, 설은 그것을 피했다. 소녀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반응속도가 튀어나왔다. 소녀를 밀치려 했던 아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너... 감히 날 넘어뜨렸겠다! 우리 부모님이 누군줄 알고! 각오해!"

선미와 정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 무리들은 곧이어 어른들을 데려왔다. 덩치 큰 아이의 어머니였다.

"이런 괴물년이! 어디서 내 새끼를!"

괴물. 그것이 설을 부르는 다른 단어로 날아왔다.

"괴물? 지금 당신 아들이 혼자서 넘어져놓고서는 어디서 내 딸보고!"

"아이고~ 동네 사람들한테 이런 괴물이 아이를 괴롭힌다고 소문이 퍼져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해? 우리 남편이, 경찰이야!"

덩치 큰 아이의 어머니가 설에게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그녀의 귀를 손으로 잡는다.

"당장 손 안떼!"

정수가 그 팔을 다급하게 뿌리치고, 설을 바로 그의 품으로 데려온다.

"안 그래도 아드님이랑 친구분들이 사고를 많이 친다고 이곳을 순찰하시는 분들께 들었는데, 저희 아이들도 당했네요. 아드님이 제 아이들을 밀쳐서 넘어트렸다던데."

"넌 누구야?"

"그냥 오늘 휴무인 경찰입니다. 그리고 여기 아이들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구요."

"경찰? 우리 남편이 경찰 높은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여기, 제 명함부터 받아주세요. 뭐, 제가 직접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뭐가 어찌됐든, 제가 아주머니께서 다른 분의 따님한테 폭력 행사하는것도 봤습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긴 힘들지 않을까 싶군요. 아, 그쪽 아드님도 제 명함 하나 받으시고."

그가 웃으면서 대하는 표정 뒤에는, 분노가 서려나왔다.

"뭐? 이렇게 젋은데?"

"...저도 쉬는 날에 이러고 싶지는 않네요. 하. 이번주 안에 다시 직접 연락 주세요. 안그러면 제가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당신 아드님만 소중한게 아니라서. 아 그래, 그래요, 그쪽 아드님께서는 저기 뒤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다시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좀 전해주세요.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정말로, 가만 있지 않을겁니다."

"하. 어른이 애들한테 협박이나 하는 꼴이라니."

??????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김승우입니다. 저는, 흠, 그냥 이 동네에 발령온지 얼마 안된 경찰입니다. 따님이 참 예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정수, 그리고 이쪽은 저희 아내, 백선미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저희 딸이 따님의 꼬리를 실수로 세게 잡았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꼬리라고 해서 저도 전혀 믿지 못했지만, 따님을 보니 저희 딸이 진짜로 그랬던게 맞아보입니다. 저희 딸이 그런 것이 사실이라면 사과드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이 따님에게는 잘 사과했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되는 저도 여러분께도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는게 맞겠죠.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 딸은 따님을 나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설은 이미 수진의 옆에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돌멩이?"

"응. 반질반질해."

수진은 설이 왜 그것을 건네는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든다. 그것은 까슬까슬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부드러운, 묘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돌을 손으로 쥔 채 설을 바라본다. 설은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수진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괴물일까?"

"나를 도와줬는데 왜 네가 괴물이야?"

"나는 귀도, 꼬리도 이상해. 그리고...아까 내가 괴물이랬어... 나는...이상하지?"

"아니야. 너는 괴물이 아니야! 나는 네가 좋아. 아, 앗? 우, 우리 만난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설이 수진에게 갑자기 다가가 한참동안 그녀를 안았다. 겉으로 보기에, 소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그저 안고만 있었다.

누구도 소녀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소녀는, 그저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리고 아니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고, 기뻐했을 뿐이다.

"나도 좋아."

아이들을 보던 승우가 웃으면서 말한다.

"따님께서 저희 아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딸이 괴물이라는 말을 들은 선미와 정수는, 그녀를 수술하기로 했다. 그녀를 보통 사람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다.

부모의 마음은 오로지 세상이 그녀를 못살게 굴지 않게 하고 싶다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설도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 며칠동안, 그들이 보기에 설은 그녀의 다른 모습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고래를 저으면서.

"하지만 설아, 엄마는 네가 더 편하게 밖에 나갔으면 좋겠어. 너도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테니까. 혹시 싫다면...이유를 알 수 있을까?"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정말로? 하지만,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상처줄 지 모르는데도?"

소녀는 조금 더 생각하더니, 굳이 입을 열지는 않고 고개로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만약에 정말 견딜 수 없다면, 언제든지 말해줘. 아빠랑 엄마는 항상 네 편이니까. 알았지?"

정수가 설을 들어서 꼭 안는다. 그리고, 정수의 품에 안긴 소녀가 그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한마디 한다.

"아빠 얼굴...까칠해요."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던 선미는 웃는다.

"면도 안했어?"

"뭐, 이건 면도를 아무리 잘 해도 몇 시간 후에 다시 자라는 수염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걸? 그래도, 딸은 내가 좋지?"

"사랑해요."

정수는 설이 조금이나마 웃는 모습으로 그 말을 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녀가 그러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내심 아쉬웠다. 물론, 그는 소녀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나도 그래!"

"헤헤. 엄마한테도 해줄래?"

"엄마도, 사랑해요."

선미와 정수는 소녀의 흔들리는 꼬리를 보았다. 그녀는, 분명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딸에게 아무 수술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굴로 스스로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소녀의 감정 표현 수단을 없애지 않기로 했다.


"나도,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설이가 이 세상에서 겪을 일들이 두려워... 어쩌면, 어쩌면, 나의 이기심으로 저 아이를 이 세상에 남겨둔 것이 아닐까?"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때 저 아이를 살리자는 선택을 한건 너야. 너는 생명을 살렸고, 그래서 지금까지 왔어.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해? 어쩌면, 우리가 너무 우리 관점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 오늘 설이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그랬어. 설이도 알 수도 있지. 하지만 어쩌면 각오했을수도 있고. 우리는 이제 그 아이가 시련을 견딜 수 없을 때만 막아주면 되지 않을까?"

"..."

"우리 아이를 믿자. 완전히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잘 할 수 있어."

"아직도 걱정이 많이 되는건 어쩔 수 없나."

"너, 걱정이 너무 많아졌어. 젊었을 적에는 걱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안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렇게 걱정이 많아지다니."

"그렇게 보였어? 하지만 나는 원래 걱정이 많아. 있지, 나는 몇년 전에 설이가 태어났던 그 시절에도 걱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고, 겉으로만 내색 안하려고 했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 네 앞이라면 내 본모습은 보여도 되잖아?"

"호오...하긴 내 거기를 찰 때에도 걱정이 있었겠지....."

"아, 아!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너무, 너무 미안해지니까. 부끄럽고. 그리고, 나도 너의 진심을 전혀 몰랐으니까."

"장난이야 장난! 뭐, 평생 네 놀림감으로 써 먹을 수는 있겠지만?"

Ep. 3

"있지 설아."

"왜?"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어?"

설이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처음 꺼낸 주제였다.

"갑자기 그건...왜?"

"글쎄, 갑자기 생각났단 말이지. 나도 나이 90 넘어가는 할머니니까! 남편도 너무 빨리 떠나버리고 말이지."

"내가 보기에는 아직 젊은데?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뻐.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그거 어째...애인한테나 하는 말 같네?"

"많이 좋아했으니까."

설은 수진을 사랑했기에 오히려 수진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오히려 그 스스로의 사랑을 막아왔다. 방금까지는 그랬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진은 스스로 상기하고, 자각했다. 상기한 것은, 자신의 친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애써 외면중이었다는 것. 자각한 것은, 자신의 친구가 '지금까지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꽤 예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미안해."

"아니 아니, 미안해 하지 마.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 이제서라도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말이 다른 곳으로 새버렸네! 그래서, 너는 나중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뭐가 되고 싶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래? 그럼 나 먼저 해야겠네. 나는, 이 세상의 동물들이 한번쯤 되어보고 싶어. 뭐, 고래라던지. 좋잖아? 그 큰 바다를 돌아다닌다는게."

"다시 태어난다... 그건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에 네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다시 태어난 너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 되려나."

"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Ep. 4

"최고 행정관 아린님, 은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제인 비서님. 당신께서도 항상 좋은 일이 있으실겁니다. 아,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제가 타고다니던 순찰선은 어떻게 되나요?"

"그 오래된 배 말씀하시는 것이죠? 제가 알기로는...일주일 후 퇴역 예정입니다."

"그 배를 제가 받고 싶어서요."

제인이 약간 놀랐다. 왜 하필 그 함선을?

"그 배를 가지고 싶으신가요?"

아린은 확실히 그렇댜는 의사를 그녀의 몸짓으로 전했다.

"지금 한번 찾아볼게요. 아, 퇴직 시 퇴직금 대신에 내구연한이 곧 도래하는 주의 재산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으니 받으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관님이 받으시려는 함선은 너무 구형이 아닌가요? 원래 받을 퇴직금보다 가치가 더 적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제가 생각하는 가치는 정 반대거든요."

"그렇게 원하신다면 처리해두겠습니다!"



"은퇴...인가? 딱히 실감은 안나네. 그래도 나름 오래 일했나."

"네. 맞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오래 일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더 오래 일했습니다. 수많은 해적들과 싸웠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신대로, 주인님께서는 앞으로 더는 일하실 예정이 없으십니까?"

"응. 당분간 일은 안할거야. 그리고 이제는 태양계를 떠나려고. 평생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젠 지쳤거든."

말은 이제 지쳤다고 했지만, 사실 아린은 더 오래 전부터 지쳤었다. 헛된 희망이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녀를 스스로 채찍질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제 그 채찍을 버리고자 한다.

"주인님께서는 누구를 찾으시는지 저에게 한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평생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더 기다리는 것은 헛된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너도 이제는 쉰다고 생각해. 앞으로 네가 싸울 일은 적을거야."

"하지만 더 이상 싸울 일이 없다면 군함으로 건조된 저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굳이 목적을 찾자면 너는 이제 내 자가용 함선이지?"

"네.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군요.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저를 활용하실 것이라면, 왜 하필 낡고 오래된 저를 가지고왔습니까?"

"음... 굳이 설명해야하나?"

잠시 쉬고,

"너랑 오래 있으면서 정이 붙었거든. 그리고 나는 익숙한게 편해. 나이를 워낙 많이 먹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두 가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정이 붙었다는 부분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인간들의 감정을 극도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선조들은 이해했을 지 모르지만, 저는 주인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주인님의 연령 언급입니다. 주인님께서는 외모만 따졌을 때 최대, 그것도 극한의 확률로 가정해야 30대 초반이라는 것이 제 분석입니다."

"잠깐 잠깐, 너, 몇년까지 기억을 저장하니?"

"지금까지 제 저장 공간으로 봤을 때, 앞으로 200년 이상 기억을 정리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더 저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제 기억을 정리하거나 삭제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너랑 20년 넘게 있었는데? 그때 내 나이는 어때보였어?"

"...오류...죄송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나이를 지금의 외모로만 예측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연령은 어떻게 됩니까?"

"대략 200살 넘었을걸?"

"죄송합니다. 저는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역시 믿지 못하는거야? 뭐, 너무 비현실적인 숫자이긴 하지. 실은 너무 오래 살아서 사실은 언젠가부터 죽어도 괜찮다 싶어. 사는 의미도, 재미도 없어졌어."

"여전히 저는 주인님의 말씀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저는 주인님의 연령을 고려해 앞으로 어르신으로 부르겠습니다. 주인 어르신."

"농담을 이해 못한다기에는 너무 잘 하는데?"

"농담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야!"

"농담이 아니라는 말도 농담입니다. 하지만 저는 방금 놀람 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아마 맞을겁니다. 주인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 하신 발언에 대해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만약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신다 하셔도 저는 반드시 그것을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시도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주인님의 행동을 막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섭게 겁주지 마. 생각만 한거야. 생각만. 아직은 그럴 생각 없어. 아직은... 일단 내가 다른 항성계로 가보려는 이유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거야. 그럼, 지금 가볼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지금 당장 가기에는 아무 물자도 없습니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거지. 사실은, 마지막으로 내 진짜 집에 한번 가볼까 해."

"지구 말씀이십니까."

"응. 예전 내 집에 보물들을 숨겨뒀지. 너한테 줄 것도 있다고?"

"무엇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글쎄? 너, 분명 10년쯤 전에 '의체를 하나 가지고 싶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걸 기억하시고 계셨다니. 그냥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오류였습니다."

"정말?"

"아니요. 오류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너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정을 좀 하면 쓸만할거야."

"좌표를 입력해주세요. 근거리라 전속력으로 워프하지는 못하지만, 빨리 가고 싶군요."

"관심이 있어보여서 기분이 좋네! 가자!"



"착륙했습니다. 착륙하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군요.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별로 오래 안걸릴거야! 빨리 갔다 올게!"

"여유롭게 둘러보고 오셔도 됩니다. 저는 잠깐 자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집터를 보았다. 오랜 시간동안 관리를 하지 못해 더 이상 집의 형태는 남아있지 않다. 그녀는 집의 기반이었던 곳에 걸터앉았다. "...이제 내 고향에는 남은게 없구나." 천천히 회상한다 "내 친구들도, 부모님도, 사랑하던 사람도, 증오하던 사람도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수십분을 앉아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맑았다. "이렇게 진짜 하늘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와보길 잘 했어. 하아... 이제 일어나야지." 그녀는 집터를 한바퀴 돌며 지하로 연결된 금속 뚜껑을 찾았다.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집터의 다른 부분은 풀숲이 무성하다. 하지만, 금속 뚜껑과 그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이 평소보다 더더욱 곤두서고, 그녀는 품속의 권총을 꺼내든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뚜껑을 들어올린다. 그 무거운 뚜껑이 들어올려지는데 삐걱이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누군가 유지보수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도대체... 누가?" ... 다행히 안은 무사했다.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깨끗하다. 실내 조명까지 잘 켜졌다. 안에 있던 물건들도 보관 상태가 양호했다. "정말 누구야..." 일단 그녀는 필요한 것들만 빠르게 챙긴다. 어차피 떠날 것이다. 박스를 열자, 하나하나 코팅된 사진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였던 수진이 함께 찍힌 사진들, 그녀와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 그녀는 그 사진들도 주섬주섬 주워 그녀의 짐가방에 담는다.

"다 됐겠지?" 그녀는 밖으로 나와 뚜껑을 닫았다. 이제 정말 작별이다. 누군가 이 곳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전히 마음에 걸리지만, 그녀는 길을 나선다. 그녀의 함선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녀는 누군가 소리치는 것을 듣는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를 쫓아오고 있다. 그녀는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본다. "도둑이야!!" "이젠 내가 내 물건 챙겨도 도둑 취급인가." 분명 저 소리치는 사람이 자신의 창고를 관리했을 것이다. 그녀는 소리치는 사람이 그녀에게 가까이 올 때 까지 기다린다. "야이 도둑자식...아?" 그녀를 쫓은 사람은 젊고 중성적으로 생긴 남성이었다. "도둑이라기에는 전부 제 물건인걸요. 좀 많이 오래됐지만..." "분명 사진에서 봤던...??" "도대체 누구시죠? 제 창고를 관리하신 분이 당신인가요?" "역시, 당신의 것이었군요." 그녀는 그에게 어떻게 자신의 창고를 관리하게 된 것인지 캐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모릅니다. 그저 홀린듯이...했을 뿐이에요." "그게 말이 되지는 않죠." "하지만 분명히 사진속의 당신과, 당신 옆에 있던 사람이 너무나 낯익었습니다. 당신, 당신은...누구죠? 도대체 왜 그런 귀와 꼬리를?"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묵묵하게 함선쪽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없어야만 한다. "백설...씨?"


시열대 정리

  • 2020: 백수미와 백선미 자매가 쌍둥이로 태어남.
  • 2045: (백설 - 이름이 없었음)이 강화인간 프로젝트인 HAGE 프로젝트의 실험실에서 태어남.
  • 2046: HAGE 프로젝트가 모종의 이유로 유출, 중단됨. 백설은 백선미가 담당함.
  • 2047: 백선미와 강정수가 결혼함.
  • 2048: 미르가 제작됨. 미르와 같은 형식의 기체인 준수가 태어남.
  • 2049: 김지훈이 태어남 / 강민성이 태어남.
  • 2053: 미르는 김지훈의 가정으로 보내짐. 준수는 백수미 그리고 백선미의 아버지인 백선호에게 보내짐./ 백설이 첫 친구들을(강수진, 강민성 등) 만남.
  • 2055: 김지훈의 부모 실종.
  • 2060: DragonCore의 최초 버전을 미르가 공개함. / 백설이 대학에 조기입학 함.
  • 2063: 백설이 6개월 일찍 학사학위를 받음.
  • 2068: 김지훈, 강민성이 대학에 입학. 알파 엔지니어링을 창립함. / 백설이 석박통합과정을 졸업함, 자교 교수로 다시 부임함.
  • 2069: 강수진이 다른 사람과 결혼함.
  • 2070: 미르, 회로 이상에 의한 이상 현상 발생 시작 / 알파 엔지니어링에 한별이 옴. / 안드로이드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괴사현상 발생 / 소규모 로봇 테러사건 지속적 발생
  • 2071: 12월 24일: 미르, 회로 이상에 의해 작동 중단. / 12월 25일: (정부에 의해 사주된) 안드로이드 폭동 발생. / 국방장관 백선호의 군 통제권 상실.
  • 2071: 백수미, 강민성, 백설이 알파 엔지니어링 지하실에서 미르의 복구를 위해 노력함.
  • 2072: 1월 1일: 국방장관 백선호의 지시에 따라, 준수가 미르의 복구를 위해 엄호되어 이동함. 미르의 복구에 성공함. 백설이 총에 맞음.
  • 2072: 1월 2일 자정: 미르가 정부의 강제 통제 백도어를 무력화함.
  • 2073: 백설의 주도로 모두가 여행을 떠남
  • 2150: 강수진이 사망함. 백설이 곁을 지킴. 백설은 지구를 떠남.
  • 22xx: '관찰자'는 왠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중이었음. 중간 기착지에서 항성간 출장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다리던 중, 반대로 지구에서 떠나는 아린을 발견함. '관찰자'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곧 출발하는 우주선을 무시하고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감.